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90년대 후반 경제학과를 졸업한 선배(몇년 전 한국은행 입행)로서 한국은행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써보려 함입니다. (여기저기 게시판을 보니 한국은행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군요)
올해 한은 입행시험은 이미 끝난 상황에서 약간 때가 늦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년부터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후배님들이 보시고 1년을 잘 활용하여 우리은행에 입행하시게 된다면 그것도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서두가 너무 기네요.
한은은..
"각종정보공유" 게시판 및 한국은행 채용 게시판에 자세한 이야기가 있더군요. 무얼하는 곳인지는 다 아실줄로 믿습니다. 한국은행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물가안정이고 그를 위해 하는 최고의 일은 금리결정입니다. 물론 한국은행에 들어오면 모두가 그런 일만 하는 줄로 생각하기도 하지만(저도 그랬습니다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몇몇 부서에서만 관련된 일을 하고 나머지는 현재 금리가 몇%인줄 알 필요도 없지요. 그렇지만 역시 한은답게 조사. 기획 관련된 일들이 많습니다. 분야는 실물경제, 금융경제, 국제, 외화자산운용, 금융제도, 발권, 홍보, 국고, 총무, 통계, 내부경영 등 셀 수 없이 많기는 하지만요. 원칙적으로 입행 후 몇 년간은 여러 부서(지역본부까지도...)를 거치고 점차로 자신의 전문분야를 찾아가게 됩니다.
직장으로서의 가치..
직장으로서의 가치는 대단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 성격 및 성향에 따라 한은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겠으나 우리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신 여러분들에게는(본인 포함) 대부분 잘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장점
한국은행의 장점이라고 하면 우선 안정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정부기관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이라 하면 상당히 안정적이지요. 한국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잘못을 범하지 않으면 해고라는 개념은 없지요.
한편 우리은행 사람들은 다른 직장으로 쉽게 옮겨다니기도 않습니다. 최근에는 우리은행에서 다른 곳으로 가시는 분들도 꽤 됩니다만, 한은에 입행하기로 작정하기로 한 사람들 자체의 성향이 그래서 그런지 조직이 안정적으로 운영됩니다. 일반 시중은행들도 꽤 안정적인 편이지만 한국은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증권사처럼 월급이 많고 실적에 따라 개인의 흥망이 크게 좌우되는 직장과는 완전히 다르고요.
한편 향후 공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대단히 큽니다. 은행에서 학비 및 생활비간 대주는 학술연수 제도가 있고(매년 십수명씩 유학을 갑니다.) 그것 이외에도 사비로 유학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술연수 제도의 수혜를 받으려면 최소 5∼6년 이상은 성실히 근무해야 하고요, 그 전에 미리 떠나려면 사비로 가야합니다. 하지만 사비유학 제도 자체도 다른 직장과는 큰 차이가 나지요. 다른 직장에서 공부를 더 하려면 일반적으로 퇴직을 해야 하지만, 우리은행에서는 휴직이 가능해서 박사까지도 따고 한은에 돌아올 수 있습니다.
직원들의 후생면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다른 게시판을 보면 주택자금 등의 이야기도 있을 뿐 아니라 월급도 다른 곳에 비해 적지 않습니다. 물론 증권사나 컨설팅 회사, 회계사 등 월급 많기로 소문난 곳에 비해서는 크지 않으나, 안정성 및 앞서 말한 가능성 등을 생각한다면 결코 적은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좋은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직장생활 하는 선배들을 만나보시면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의 자질이 직장생활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지 확인하실 수 있을겁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은행 사람들은 많이 똑똑하고(저는 제외 -.-;;) 합리적입니다. 여자분들이 직장내 성희롱 등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고, 지연·학연 등에 따른 비리(?)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학교 선배들도 아주 많습니다. 우리학교 사람들이 서울대에 비하면 좀 적은 수준이지만 고대에 비하면 아주 많지요. (현직 이사 5명중 3명이 우리학교 출신일겁니다) 선후배간 관계도 좋은 편이고요. 후배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은행에서 뵙게 되길 바랍니다.
단점
은행 내부에 있는 사람으로서 단점을 말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장점을 뒤집으면 단점이 될 수 있지요. 안정성은 다른 말로 좀 답답한 직장이라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몇 년 근무하면 어지간할 경우 얼굴이라도 알게 되고, 결과적으로 reputation이 상당히 중요하지요. 처음 몇 년 불성실한 사람으로 소위 찍히면 향후 직장생활이 아주 어렵습니다.(물론 다른 직장도 마찬가지겠지요).
권력도 없습니다. 중앙은행은 정치적으로 움직이지 않아야 하므로 정부 관료에 비하면 꽁생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금리정책을 한국은행에서 독자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하지만 정치적인 관료들의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위해서는 더욱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은행감독원이 분리되어 금융기관에 대한 힘도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정확·합리성을 추구하고 착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므로, 성격에 어느 정도 맞는다면 happy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전공을 살리게 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직장과 마찬가지로 한국은행에서 거창한 경제학이론을 이용해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다른 직장에 비해서는 경제학을 refer 할 일이 크게 많지만, 조사국 등 일부 부서에서만 경제학을 심도있게 연구할 뿐 다른 부서에선 그렇게 많이 쓴다고 볼 수 없습니다.(처음 입행했을 때는 복사, 자료수집 등도 아주 많이 합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여러분들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 이상 한은에서는 여러 가지 일을 하거든요. 하지만 우리은행의 어떤 분야에서도 우리 경제학이 가장 크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경제학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분들은 조사국 근무를 희망할 수도 있고요.
지역본부에 근무해야 한다는 것도 어찌 보면 단점입니다. 입행하자마자 지역본부로 발령받는 경우도 꽤 있고, 본점 근무 하다가 지역본부로 발령이 나기도 합니다. 첫 10년가 최소 한번은 지점 근무를 해야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본인의 고향으로 내려가는 경우도 왕왕 있으나, 저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대부분은 서울에 근거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본점에서 몇 년 근무 후 지금은 지역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첫 발령 때는 막막하더니 지금은 여기도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근무환경도 참 좋고요(지방 살아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본점에서보다 바쁜 것도 한결 덜합니다... 집 등은 은행에서 알아서 해 주니까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혼하기가 좀 힘든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바쁜 서울생활에서 떠나서 한 2년간 여유를 가지는 것도 한국은행의 큰 장점이 아닌가 합니다.
한은에 입행하려면
한은에 들어오시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주위에서 많이 보셨겠지만, 우리나라 경제학과 학생이라면 한국은행을 dream job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률도 대단히 높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진 마세요. 여러분들의 능력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시험은?
저는 입행시험 담당자가 아닙니다. 저는 제 입행 경험과 주워들은 이야기를 기초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으나, 정확한 사항 확인은 candidate 여러분의 책임이라는 점을 우선 집고 넘어갑시다.
시험은 10월경에 봅니다(올해는 좀 빨라진 것 같네요). 올해 기준 시험과목, 배점 등은 직접 찾아보세요. 이후 면접, 집단토론(요새도 하나?), 적성검사 등 다른 직장에서 다 하는 절차를 거치고요. 시험은 좀 어렵습니다. 출제 위원들이 최근 유학을 마치고 복귀한 직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최신이론에 관한 문제가 많고 난이도도 상당히 높습니다. 미·거시, 화금론, 국제경제학, 계량 등을 열심히 공부하면 문제가 없을것으로. 게시판에 보니 후기도 있던데 참고하시는 것도 좋을겁니다. 교양공부는 경제, 경영, 법 관련 기본내용이 주로 나오고 황당한 상식문제도 나옵니다. 그렇다고 일반상식 열심히 공부하는 일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책은 사더라도 경제, 경영, 법 관련만 보세요. 전공이나 교양과목 모두 O, X 선택, 단답형, 5지선다, 간략 서술형, 큰 서술형 모든 형식이 나옵니다.
영어는 Toeic 대체입니다. 우리은행에서는 1년만 인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년에 입행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내년 성적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영어성적은 기본이니까 가능한 한 높은 점수를 받으시는 것이 좋겠지요? 시험과목 배점 등은 제가 올해 기준이라고 강조하는 것을 유념하세요.
맺음말
지금까지 내부자 입장에서 한국은행 이야기를 두서 없이 해 보았습니다. 경제학전공자 입장에서 전공을 나름대로 살려가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모색하기에는 최선의 직장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단점도 많고 보완할 점도 많은 직장이기도 하지만요. 한국은행 입행시험에 너무 겁먹거나 거부감을 느끼지는 마세요. 다른 직장에서 조금씩 오랜기간 받는 스트레스를 입행시험 때 몰아 받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되거든요. 올해 시험이야 이미 끝났고 내년을 준비하게 될 후배여러분께서 1년간 열심히 하시면 좋은 결과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은행에서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